강성복 목사
어느 가난한 부부가 자녀 여섯을 낳아 어렵게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자식을 두지 못한 매우 가까운 부자친구가 한 아이를 자기에게 양자로 주면 잘 키우고 교육도 잘 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어간 다음에 부부는 그 문제를 의논하였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 첫째 아이인 아들을 바라보았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다. 이번에 역시 첫 딸이라 보낼 수가 없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넷째 아이는 장모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부인이 거절했다. 다섯째 아이는 남편과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갓난아기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부인은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아기, 귀여운 것... 남에게 어떻게 이 핏덩이를 주겠느냐... 절대로 줄 수 없어요!”하며 통곡하고 말았다. 이 부부는 여섯 자녀가 있었지만 그 한명이라도 남에게 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6명이 있어도 한명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 품안에 단 하나의 독생자밖에 없었으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어주셨다. 이 세상을 위해 그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보내 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이 절기가 성탄절이고 그 성탄절을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이다. 지금 우리는 이 대림절 절기를 보내고 있다.
대림절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대림”이라는 말은 라틴어 “adventus”(옴, 도착)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기다림 즉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상의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보통 대림은 성탄일 이전의 네 번의 주일을 포함하는 기간 전체를 일컬어서 하는 말이다. 이때를 말하여 대림절이라고 한다. 이런 대림절에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1) 이 세상에 탄생하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에 대한 준비의 시기이며, 2)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기다림과 심판에 대한 준비의 시기이다. 3) 이 대림절은 특별히 이 세상에 아기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마태복음을 보면 아기 예수님은 동정녀인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아이가 잉태되었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을 한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마태복음 1장 22-23절에 이런 말씀을 들려준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소식은 처녀인 마리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아기를 잉태한다니 말이 되는가? 이것은 수치요 처녀로서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었느니라.”(눅 1장 30절)는 천사의 말을 듣게 된다. 이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반응을 하였다. 이 반응은 “나는 비록 처녀의 몸이지만 하나님이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케 하시고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임마누엘이라. 알려 주시니 그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믿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의 위대한 믿음의 반응을 보기도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아기의 이름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이 보여주신 인간 사랑이다. 그렇다. 마리아가 낳을 아기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아기의 이름이 무엇인가?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무슨 말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그 이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또 이름이 무엇인가? “임마누엘”이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은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는 혼자 살아서는 안 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죄인인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살아간다면 너무 힘들고 어려움 속에 살아가야 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보내 주셨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 깨닫고 있는가? 우리는 이 대림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하여야 한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힘든 우리를 도와주고 힘을 주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요한1서 4장 19절을 보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와 같이 사랑하여 주셨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시고 아들을 보내 주셨다. 이제 죄 사함 받았으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승리하며 살아가는 독자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사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준비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절기가 되게 하자. 그것이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다. 아멘! 할렐루야!
(YouTube : 강성복목사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