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며칠 간 심심찮게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포근해진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비는 적당히 우리의 기분을 상쾌하게 상승시켜 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비가 오는 날이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비로 인한 산사태로 살 곳을 잃은 딱한 소식이 들려오고 어디에선 물이 없는 고갈 현상이 생명을 앗아간다고 하는데 사치스러운 비 타령이 송구하다.
문학 속에서의 비의 등장은 대부분 우울한 얘기와 연결되고 비가 오는 날의 배경 설정은 우울한 내면과 절망을 표현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가난한 도시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드러낸 사실주의 작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첫 대목에서 부터 앞으로 전개 될 소설의 결론을 제시하여 글을 읽어가는 내내 음습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다] 시작 부분에서 차라리 눈이라면 포근할텐데 눈이 변해, 비가 오는 것으로 표현하여 우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자연 현상을 소재로 창작되어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맛있게 어우르려는 작가의 창작 심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예가 있다하여 비의 소재를 우울한 이미지로만 고정하진 말자. 봄에 내리는 비는 추적추적 내리지 않고 노래 부르듯 경쾌하게 내린다. 이런 분위기에 창작되는 봄비는 단어 자체 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한다.
많은 시와 노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이채 시인의 [가끔은 비가 되고 싶다]라는 시가 오늘 아침에 아릿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은 비가 되고 싶다./ 비가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울 때 초록비나 꽃비가 되어, 나도 세상의 무엇 하나 반듯하게 키워내고 싶다/ 생명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아버지의 탯줄 같고 어머니의 젖줄 같은 물/ 땅 속에는 하늘의 물이 흐르고 당신과 나 사이에는 사랑의 물이 흐른다/ 하늘비는 이 땅의 축복,누구에게 축복의 이유가 되고 싶다.]
황인숙 시인도 그랬듯이 “비가 오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참 반갑다”, “ 비가 자주 오니 정말 살맛이 나네” 라며 대화의 문을 열기도 한다.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계절상으로 봄비지만 봄비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우리의 일상들이 포근할 수 없는 환경 탓이리라. 마음이 추워서인지 오늘은 별나게 차갑게 느껴진다. 눈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당연히 비오는 날의 기분을 계절에 따라 이리저리 느낄 수 밖에 없다. 비가 오는 날이 유난히 좋아 주위의 모든 상황을 다 보듬을 수 있다면 비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푸근해서 그랬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마음을 비 때문이라고 덮어 씌운다.
지금 밖엔 가느다란 실비가 내리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인 비도 살짝 눈치를 보며 여린 마음이 되어 눈물을 질글질금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감성을 느끼게 해준 비를 향해 살짝 원망한 마음을 다시 돌려 잡는다. 이 마음의 끝을 잡고 보고 싶은 이에게 글이라도 한 번 전해보면 어떨까!
재외 동포신문을 타고 나간 교육현장의 글이 곳곳에 전달되어 시차를 견뎌야하는 방송 인터뷰가 쇄도해 바쁜 나날을 보낸 이 즈음에 내린 비는, 나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는 생명과 같은 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