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소실대득(小失大得)
2019/06/19 10: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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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소탐대실은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작은 것이지만 결국은 그 욕심으로 인하여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삶의 현장에 그와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현실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탐대실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
 소탐대실의 반대말로 소실대득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 작은 것을 잃으면 큰 것을 얻게 된다. 이러한 원리가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이다. 적은 량의 씨앗을 심으므로 많은 것을 거두게 된다. 농부가 파종하는 것은 버리는 것과 같다.
 농사를 많이 짓는 농부는 아마도 많은 것을 먹지 못하고 씨앗으로 버리는 손실을 통해서 파종하므로 작은 것을 손실을 보게 되지만 그 결과 많은 것을 거두게 된다. 만약에 씨앗을 파종하는 것이 아깝다고 파종하지 아니하면 가을에 아무 것도 거둘 수 없다. 씨앗을 파종하므로 손실을 보는 농부만이 30배, 60배. 100배, 그보다 더 많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농사의 법칙은 소실대득의 원리이다.
 또한 소실 대득의 원리는 농사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원리에도 적용이 된다. 영적인 원리에는 더 확실하게 적용이 된다. 농사에서는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 환경적인 요인으로 거두지 못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병충해로, 자연재해로 기대만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원리는 정확하게 적용이 되는 것이다. 왜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눅 6:38에 “주는 자에게 복을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주는 삶은 낭비, 허비와 같다.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에게 주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낭비요, 허비요,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시되 오히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주신다는 말씀이다. 조금 주었는데 주님은 많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이다. 소실대득의 결과로 역사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왕상 17장에 소개되는 사르밧 과부의 가정이 소실대득의 복을 받았다. 선지자 엘리야에게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하므로 한 끼의 손해를 보았지만 그 후에 3년 6개월 기근 시에 모자와 선지자 3명이 먹고 살았다. 마 14장 13절 이하에 오병이어의 기적의 역사가 바로 소실대득의 기적이다. 어린이 도시락 하나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 먹고 무려 12바구니가 남았다. 마 15장 29절 이하에 칠병이어의 기적의 역사도 역시 그와 같은 기적의 역사이다.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기 남았다. 주님이 역사하시면 이처럼 소실대득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작은 자 하나에게 선을 나누는 삶이 바로 작은 것을 심는 것이다. 충성, 봉사, 헌신하는 것이 바로 작은 것을 심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물질을 드려서 선교를 하는 것이 거룩한 낭비요 축복과 상급의 열매를 예비하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풍성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거룩한 낭비요 심는 것이다. 그러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지켜 주신다. 복의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시고 전대에 구멍이 뚫어지지 아니하도록 지켜주신다. 그러나 말씀을 불순종하면 여호와께서 저주를 내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소탐대실의 헛수고의 인생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복의 씨앗을 심어놓으면 풍성한 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심으로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난 복을 주시는 것이다. 소실대득의 인생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심어야 한다. 허비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낭비요, 이 땅에서의 복으로, 영원한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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