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묵 목사(신광침례교회 담임)
2년 전 쯤 한국 불교에서 기복적인 신앙을 탈피해서 불교를 쇄신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이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우리 기독교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감이 가고, 동시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극도로 팽배한 이 시대에 한국 불교가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 갈지 사뭇 궁금한 마음에 기대를 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 하는 기도와 다른 종교에서 하는 기도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고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심지어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셨다는 분들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복을 구하고 비는 정도로 기도를 이해하는 경우가 안타깝게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다른 종교에서의 기도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기도하는 이유”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계시와 진리”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기독교가 “정성과 이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타종교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입니다. “계시와 진리”가 기독교의 특징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도 산에 올라 바위나 나무에 치성을 드리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갖게 될 뿐입니다. 자기가 믿는 신에게 정성을 다해 빌어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정성과 이적”은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계시와 진리”를 핵심과 특징으로 삼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심지어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가 충족되는 것조차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에 기도로 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도,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간구를 통해 채워 주시려는 하나님의 이유에 대해 종교 개혁가였던 칼빈이 이런 좋은 답을 했습니다. 먼저는 “모든 좋은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설령 아무리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생겨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런 인식이 없기에 감사와 찬양도 없게 됩니다. 결국 기독교에서의 기도의 포인트는 응답을 받는 것 그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이 해도 첫 달이 지나 두 번째 달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도 개인적인, 그리고 복된 관계, 그 시작을 이틀 후 주일 예배에서부터 시작하시기를 진심으로 권면하고 축복합니다.
고현묵 목사(신광침례교회 담임)
2년 전 쯤 한국 불교에서 기복적인 신앙을 탈피해서 불교를 쇄신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이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우리 기독교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감이 가고, 동시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극도로 팽배한 이 시대에 한국 불교가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 갈지 사뭇 궁금한 마음에 기대를 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 하는 기도와 다른 종교에서 하는 기도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고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심지어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셨다는 분들조차도 자신이 원하는 복을 구하고 비는 정도로 기도를 이해하는 경우가 안타깝게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다른 종교에서의 기도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기도하는 이유”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계시와 진리”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기독교가 “정성과 이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타종교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입니다. “계시와 진리”가 기독교의 특징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도 산에 올라 바위나 나무에 치성을 드리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갖게 될 뿐입니다. 자기가 믿는 신에게 정성을 다해 빌어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정성과 이적”은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계시와 진리”를 핵심과 특징으로 삼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심지어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가 충족되는 것조차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에 기도로 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도,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간구를 통해 채워 주시려는 하나님의 이유에 대해 종교 개혁가였던 칼빈이 이런 좋은 답을 했습니다. 먼저는 “모든 좋은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설령 아무리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생겨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런 인식이 없기에 감사와 찬양도 없게 됩니다. 결국 기독교에서의 기도의 포인트는 응답을 받는 것 그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벌써 이 해도 첫 달이 지나 두 번째 달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고도 개인적인, 그리고 복된 관계, 그 시작을 이틀 후 주일 예배에서부터 시작하시기를 진심으로 권면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