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예수 믿는데 왜 되는 것이 없느냐고, 시집 잘못 같다며 우리 부부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내 큰 오빠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 애들을 보고 너희부부를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책도 사드리고 그렇게 기도 했건만 “내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는 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영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며 준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만 살아 있는 구경꾼이 있다. 여기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나는 구경꾼이 아니고 준비된 자인가? 아무도, 누구도 365일 동안을 살면서 행여나 “너는 준비가 안된 자이지만 나는 준비된 자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아무도 자유치 못하기에 상대를 가르치는 손가락은 하나요 셋은 나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무슨말인가? 그래서 경건은 연습으로 선행도 훈련으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 한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지지 포도 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아니기에 포도나무로 착각 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지 않는가? 과연 내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는지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가끔은 불신앙과 어두움과 부정적인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긍정적이요 오직 믿음 안에서 온전히 서 있는 줄 착각하는 상대를 우리는 왜? 순간적으로 싫어하게 되는가 생각해 본다. 이유는 그 상대에게서 똑같은 내가 보이고 말씀과 행동이 다른 내가 바로 그이니까 결국은 그가 아닌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아웅 다웅하던 불신앙의 옷을 벗어 던지고 이제는 “준비”하는 삶으로 거룩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처럼 거룩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그 답은 “왜? 내 맘대로 해야 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가 아닐까? 큰 오빠가 제주도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셨다. 자주 그 곳에서 묵으면서 친분이 있는 분들과 골프를 치셨다고 했다. 워낙 남존여비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데다 믿음이 없으신 오빠가 골프장에서 아내의 친구가 있는데서 자기 아내를 향해 큰 소리로 나무라고, 자기의 마음대로 명령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행동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큰 새언니의 친구가 언니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했다. “우리 시 아버님도 항상 신 회장처럼(오빠를 지칭)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셔서 자신이 별명을 부쳤다고 하면서, 성씨 다음에 이름을 빼고 지맘대로 한다는 뜻으로 “지맘” 이라 부쳐서 “박지맘”이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더란다. 신 회장도 원식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 자리에 “지맘”을 부쳐서 혼자 몰래 “신지맘”이라고 부르면서 위로를 받으라면서 장난스럽게 언니에게 말을 하더란다. “신지맘” 나의 새 언니는 그렇게 길들여져서 아무렇지도 않았었지만 듣고 보니 정말 오빠가 지맘대로 했더라고 하면서 시누이인 나에게 웃으며 전해준 말이다. 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빠 이름 바꿨어 고모. 신지맘으로” 너무나 맞는 말이여서 언젠가 베데스다교회 여전도회 헌신예배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 하며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지맘”으로 바꾸어 불러보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즐겁게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이지맘, 정지맘......”이라 불러보았다. 나의 오빠만 신지맘이였을까? “왜? 내맘(지맘)대로 해야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내맘대로 살던 지난날의 신지맘이라는 이름이 과연 언제나 완전히 버릴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는 지맘대로 살면서 하나님 맘대로 사는 줄로 착각하는 한 결코 거룩을 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서 쓴 웃음을 지어 보는데 뻐쓰가 빠또스에 도착했다. 새벽 3시 반에 조착한다더니 새벽 4시 반에 도착했다. 결국 9시간이 걸렸다.이제부터 주님이 무슨 일을 예비하셨을까? 기대하면서.... 좀 쉬어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온생을 거룩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침묵을 실천하고 살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예수 믿는데 왜 되는 것이 없느냐고, 시집 잘못 같다며 우리 부부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내 큰 오빠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 애들을 보고 너희부부를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책도 사드리고 그렇게 기도 했건만 “내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는 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영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며 준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만 살아 있는 구경꾼이 있다. 여기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나는 구경꾼이 아니고 준비된 자인가? 아무도, 누구도 365일 동안을 살면서 행여나 “너는 준비가 안된 자이지만 나는 준비된 자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아무도 자유치 못하기에 상대를 가르치는 손가락은 하나요 셋은 나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무슨말인가? 그래서 경건은 연습으로 선행도 훈련으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 한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지지 포도 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아니기에 포도나무로 착각 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지 않는가? 과연 내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는지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가끔은 불신앙과 어두움과 부정적인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긍정적이요 오직 믿음 안에서 온전히 서 있는 줄 착각하는 상대를 우리는 왜? 순간적으로 싫어하게 되는가 생각해 본다. 이유는 그 상대에게서 똑같은 내가 보이고 말씀과 행동이 다른 내가 바로 그이니까 결국은 그가 아닌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아웅 다웅하던 불신앙의 옷을 벗어 던지고 이제는 “준비”하는 삶으로 거룩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처럼 거룩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그 답은 “왜? 내 맘대로 해야 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가 아닐까? 큰 오빠가 제주도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셨다. 자주 그 곳에서 묵으면서 친분이 있는 분들과 골프를 치셨다고 했다. 워낙 남존여비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데다 믿음이 없으신 오빠가 골프장에서 아내의 친구가 있는데서 자기 아내를 향해 큰 소리로 나무라고, 자기의 마음대로 명령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행동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큰 새언니의 친구가 언니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했다. “우리 시 아버님도 항상 신 회장처럼(오빠를 지칭)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셔서 자신이 별명을 부쳤다고 하면서, 성씨 다음에 이름을 빼고 지맘대로 한다는 뜻으로 “지맘” 이라 부쳐서 “박지맘”이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더란다. 신 회장도 원식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 자리에 “지맘”을 부쳐서 혼자 몰래 “신지맘”이라고 부르면서 위로를 받으라면서 장난스럽게 언니에게 말을 하더란다. “신지맘” 나의 새 언니는 그렇게 길들여져서 아무렇지도 않았었지만 듣고 보니 정말 오빠가 지맘대로 했더라고 하면서 시누이인 나에게 웃으며 전해준 말이다. 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빠 이름 바꿨어 고모. 신지맘으로” 너무나 맞는 말이여서 언젠가 베데스다교회 여전도회 헌신예배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 하며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지맘”으로 바꾸어 불러보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즐겁게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이지맘, 정지맘......”이라 불러보았다. 나의 오빠만 신지맘이였을까? “왜? 내맘(지맘)대로 해야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내맘대로 살던 지난날의 신지맘이라는 이름이 과연 언제나 완전히 버릴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는 지맘대로 살면서 하나님 맘대로 사는 줄로 착각하는 한 결코 거룩을 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서 쓴 웃음을 지어 보는데 뻐쓰가 빠또스에 도착했다. 새벽 3시 반에 조착한다더니 새벽 4시 반에 도착했다. 결국 9시간이 걸렸다.이제부터 주님이 무슨 일을 예비하셨을까? 기대하면서.... 좀 쉬어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온생을 거룩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침묵을 실천하고 살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