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브라질 북동부 뻬르남부꾸(Pernambuco)에 갔을 때 집집마다 붉은 깃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주도인 헤시피(Recife)에서 출발해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좁은 국도를 지나다 보면 더 많은 붉은 물결을 발견 했습니다. 노동당(PT)의 깃발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브라질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치인들의 부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지요. 낙후한 북동쪽의 실태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표출됩니다. 세계 10위 내 경제대국도, 월드컵과 올림픽을 유치한 저력도 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 입니다. 아직도 대다수 북동쪽 사람들(Nordestino)에게 대통령은 룰라(Lula)이고 노동당(PT)은 자신의 낙후한 삶을 대변하고 개선해 줄 유일한 창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북동부에는 가난하고 외진 지역이 많습니다. 유럽의 정복자들이 가장 먼저 식민지 도시를 건설한 지역이 다름아닌 북동쪽 해안가였습니다. 자연스레 식민지 시절 북동부는 돈이 돌고 사람이 모이는 부유한 지역이었지요. 헤시피(Recife)와 사우바도르(Salvador)는 설탕 산업이 시작되었고 식민지 경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파울로, 히오, 벨로 오리존치, 포르투 알레그리와 같은 남동쪽에 비해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기간산업이 적으며, 교육의 수준이 낮고, 대물림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합니다. 이 불평등은 내부에서 발견됩니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 마샬 어킨 교수는『Brazil: The Once and Future Country』(1997) 에서 북동쪽 해안가 지역은 비옥한 농지, 설탕농장, 큰 도심지, 아프리가 문화로 인해 ‘풍요로운 문명’을 이룬 반면, 내륙지역은 쓸모 없는 땅, 가축목장, 가뭄, 원주민 문화로 ‘뒷동네 문명’을 형성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식민지 시절부터 수세기 지속된 노예제, 소수에게 집중된 토지, 경제 쇠퇴의 유산에서 찾습니다. 브라질 국내총생산의 15%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거의 30%이고 6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이 불평등은 해소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가뭄의 문제는 북동쪽 내륙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를 대변합니다. 지역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물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가뭄이 극심한 지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공무원들은 물을 끌어 가뭄지역에 생존을 위한 물을 공급할 기술과 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와 행정력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치수에 비용이 많이 들고 지속가능 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수지의 물을 지역의 정치인들과 영향력 있는 집단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병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물을 주고 선거가 끝나면 물을 끊는 식입니다. 물 부족과 환경의 열악함은 이 곳 사람들을 고립시킵니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단순하고 생각이 갇혀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보고 듣고 경험 한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개척할 의지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삶의 자원이 부족한 것이지요. 안타깝지만 그냥 그렇게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이곳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상파울로에도 북동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킨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에 180만명이 그들의 집을 떠났고 브라질 전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상파울로, 히오에 정착한 이들은 남동부 문화에 북동쪽 문화인 퇴보, 가난, 인종적 유산, 전통문화를 이식해 다양한 브라질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이런 지역적 차이가 사회적 통합과 연대를 더디게 할지라도 문화의 다양성은 브라질의 유산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브라질 한인도 상파울로라는 지역적 기반을 삼아 보다 다채로운 브라질을 경험하고 발을 내 디딜 때입니다. 많이 경험할 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필자가 브라질 북동부 뻬르남부꾸(Pernambuco)에 갔을 때 집집마다 붉은 깃발이 걸려 있었습니다. 주도인 헤시피(Recife)에서 출발해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좁은 국도를 지나다 보면 더 많은 붉은 물결을 발견 했습니다. 노동당(PT)의 깃발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브라질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치인들의 부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지요. 낙후한 북동쪽의 실태에 대한 불만이 여과 없이 표출됩니다. 세계 10위 내 경제대국도, 월드컵과 올림픽을 유치한 저력도 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 입니다. 아직도 대다수 북동쪽 사람들(Nordestino)에게 대통령은 룰라(Lula)이고 노동당(PT)은 자신의 낙후한 삶을 대변하고 개선해 줄 유일한 창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북동부에는 가난하고 외진 지역이 많습니다. 유럽의 정복자들이 가장 먼저 식민지 도시를 건설한 지역이 다름아닌 북동쪽 해안가였습니다. 자연스레 식민지 시절 북동부는 돈이 돌고 사람이 모이는 부유한 지역이었지요. 헤시피(Recife)와 사우바도르(Salvador)는 설탕 산업이 시작되었고 식민지 경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파울로, 히오, 벨로 오리존치, 포르투 알레그리와 같은 남동쪽에 비해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기간산업이 적으며, 교육의 수준이 낮고, 대물림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합니다. 이 불평등은 내부에서 발견됩니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 마샬 어킨 교수는『Brazil: The Once and Future Country』(1997) 에서 북동쪽 해안가 지역은 비옥한 농지, 설탕농장, 큰 도심지, 아프리가 문화로 인해 ‘풍요로운 문명’을 이룬 반면, 내륙지역은 쓸모 없는 땅, 가축목장, 가뭄, 원주민 문화로 ‘뒷동네 문명’을 형성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식민지 시절부터 수세기 지속된 노예제, 소수에게 집중된 토지, 경제 쇠퇴의 유산에서 찾습니다. 브라질 국내총생산의 15%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거의 30%이고 6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이 불평등은 해소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가뭄의 문제는 북동쪽 내륙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를 대변합니다. 지역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물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가뭄이 극심한 지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공무원들은 물을 끌어 가뭄지역에 생존을 위한 물을 공급할 기술과 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와 행정력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치수에 비용이 많이 들고 지속가능 하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저수지의 물을 지역의 정치인들과 영향력 있는 집단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병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물을 주고 선거가 끝나면 물을 끊는 식입니다. 물 부족과 환경의 열악함은 이 곳 사람들을 고립시킵니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단순하고 생각이 갇혀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보고 듣고 경험 한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개척할 의지가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삶의 자원이 부족한 것이지요. 안타깝지만 그냥 그렇게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이곳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상파울로에도 북동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킨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에 180만명이 그들의 집을 떠났고 브라질 전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상파울로, 히오에 정착한 이들은 남동부 문화에 북동쪽 문화인 퇴보, 가난, 인종적 유산, 전통문화를 이식해 다양한 브라질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이런 지역적 차이가 사회적 통합과 연대를 더디게 할지라도 문화의 다양성은 브라질의 유산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브라질 한인도 상파울로라는 지역적 기반을 삼아 보다 다채로운 브라질을 경험하고 발을 내 디딜 때입니다. 많이 경험할 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