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선교사로 만드시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시키시느라고 뉴욕에서 투자해 주신 소중한 고난의 역사들을 간증집으로 출간하고 그 판매 전액을 투자하야 먼저 브라질 신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를 드리며 서원했다. 우리 부부는 드디어 1995년 7월 22일 선교사로 브라질 쌍파울로에 도착하였다. 어느날 한인 선교사 모임에 나갔더니 은퇴할 년령인 58세의 선교사가 어떻게 선교사역을 감당하겠느냐고 농담섞인 걱정을 하는 젊은 선교사들의 따가운 눈총은 총알처럼 우리 부부의 가슴에 박혔다. 그때에 “어디 두고 봐라 하나님이 하시지 내가(우리가) 하니?” 하는 반감이 용수철 처럼 튀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하리라고 굳게 마음먹고 드디어 1995년 9월 12일에 전에 대흥교회였던 자리에 출석인원 8명으로 베데스다교회의 설립 예배를 드렸다. 베데스타교회가 설립되기 전 대흥교회는 13년 동안 교회 이름을 영생교회, 남미제일교회, 부활교회 그리고 대흥교회 등 4 번씩이나 바꾸면서 17명의 목사가 거쳐갔을 뿐 아니라 싸움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교회였다. 이렇게 많은 사연과 아픔 속에 재적 13명의 교인이 남아있었지만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에는 모두 연락을 했어도 8명이 출석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브라질에 도착하자, 브라질을 떠나기 전 같은 교회를 함께 섬겼던 장로님과 집사님 권사님들이 S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부부를 찾아왔다. 그리고 세 교회가 합쳤던 대흥교회가 교인들이 거의 헤어졌고, 지금은 목회자가 없어서 교회문을 잠그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대흥교회의 담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일단 찾아온 교우들과 함께 닫혀 있는 교회를 가서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목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니 일단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다. 그리고 1개월 간 기도 후에 결정을 하기로 하고 8월 첫 주일부터 주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달을 지나는 동안 40명 남짓한 성도들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이 교회를 거쳐간 목사님 중 몇 분과 전에 같은 교회를 섬기던 교우들이 찾아와서 왜 하필 말썽 많고 평판도 나쁜 교회를 담임하려느냐? 만일 이 교회에서 김 목사님도 쫓겨나면 선교를 하는데도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니 차라리 새로 교회를 개척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약속한 8월 마지막 주일이 지났으나 마음에 기쁨으로 결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부부가 이 문제를 놓고 한 주간을 더 기도하던 중에 “너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보내준 나의 양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선교사로 만드시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시키시느라고 뉴욕에서 투자해 주신 소중한 고난의 역사들을 간증집으로 출간하고 그 판매 전액을 투자하야 먼저 브라질 신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를 드리며 서원했다. 우리 부부는 드디어 1995년 7월 22일 선교사로 브라질 쌍파울로에 도착하였다. 어느날 한인 선교사 모임에 나갔더니 은퇴할 년령인 58세의 선교사가 어떻게 선교사역을 감당하겠느냐고 농담섞인 걱정을 하는 젊은 선교사들의 따가운 눈총은 총알처럼 우리 부부의 가슴에 박혔다. 그때에 “어디 두고 봐라 하나님이 하시지 내가(우리가) 하니?” 하는 반감이 용수철 처럼 튀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하리라고 굳게 마음먹고 드디어 1995년 9월 12일에 전에 대흥교회였던 자리에 출석인원 8명으로 베데스다교회의 설립 예배를 드렸다. 베데스타교회가 설립되기 전 대흥교회는 13년 동안 교회 이름을 영생교회, 남미제일교회, 부활교회 그리고 대흥교회 등 4 번씩이나 바꾸면서 17명의 목사가 거쳐갔을 뿐 아니라 싸움으로 유명세를 치르던 교회였다. 이렇게 많은 사연과 아픔 속에 재적 13명의 교인이 남아있었지만 첫 예배를 드리는 주일에는 모두 연락을 했어도 8명이 출석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브라질에 도착하자, 브라질을 떠나기 전 같은 교회를 함께 섬겼던 장로님과 집사님 권사님들이 S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우리부부를 찾아왔다. 그리고 세 교회가 합쳤던 대흥교회가 교인들이 거의 헤어졌고, 지금은 목회자가 없어서 교회문을 잠그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대흥교회의 담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일단 찾아온 교우들과 함께 닫혀 있는 교회를 가서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목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니 일단 예배를 드리자고 하였다. 그리고 1개월 간 기도 후에 결정을 하기로 하고 8월 첫 주일부터 주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달을 지나는 동안 40명 남짓한 성도들을 보내 주셨다. 그런데 이 교회를 거쳐간 목사님 중 몇 분과 전에 같은 교회를 섬기던 교우들이 찾아와서 왜 하필 말썽 많고 평판도 나쁜 교회를 담임하려느냐? 만일 이 교회에서 김 목사님도 쫓겨나면 선교를 하는데도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니 차라리 새로 교회를 개척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약속한 8월 마지막 주일이 지났으나 마음에 기쁨으로 결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부부가 이 문제를 놓고 한 주간을 더 기도하던 중에 “너희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보내준 나의 양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