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움의 잡초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미움은 성도인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움을 가장 무서운 중죄인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와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다. 요일 3:1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움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가장 심각하고 나쁜 마음의 잡초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각하고 나쁜 잡초인 미움을 우리 마음 밭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있게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미움의 잡초를 우리 마음 밭에서 찾아내어 철저하게 뽑아내야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어떻게 죽였는가? 우발적으로, 과실로 동생을 죽였는가? 아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동생을 미워하는 미움이 그 마음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미움이 가인의 마음속에 있다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움을 그대로 마음속에 놓아두면 자라게 되어 있다. 가만히 두어도 비온 뒤에 죽순이 자라듯이 쑥쑥 잘도 자란다. 미움의 씨가 마음속에 심겨지게 되면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그것이 말로 나타나게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 결국 자라서 죽음의 열매를 맺게 되고 마는 것이다. 로마황제 네로에게 기독교인들에 대한 미움이 결국 로마 시에 불을 질러 놓고 그 방화 범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살해 하였다. 독일의 히틀러의 마음속에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이 있을 때, 그 미움이 결국 600만 명의 무고한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가스실에 넣어 죽였다. 미움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그러므로 미움은 살인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미움은 불과 같다. 마음속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작은 것인데도 그 미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움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면 미워해야하고 내가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하고 그러면 내가 먼저 그 일에 전념하다가 내가 먼저 죽는다. 원수 갚는 것 누가 갚아주신다고 하시는가? 주님이 갚아 주신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은 주님께 맡기고 미움을 떨쳐버리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갚으려고 하면 내가 손해이다. 누군가를 미워해 보라. 마음에 평안, 기쁨, 감사가 있는가? 전혀 없다. 그러면 내가 손해이다.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니까 성령이 떠나고 그 마음에 악신이 역사하여 사울을 번뇌케 하고 괴롭게 하고 불안케 한 것을 볼 수 있다. 악신이 역사하면 사람이 불안, 초조, 염려, 걱정, 근심에 휩싸여 피폐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서로 미워해 보라. 부부가 아니라 원수지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행복해야할 가정이 지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미움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얼마나 우리의 삶에 해악의 요소인지 모른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이웃을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면 절대로 이웃과 화목할 수 없다. 이웃사촌이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 미움으로 이웃과 평생 원수처럼 지내는 것이다. 이런 해악의 요소인 미움의 잡초를 우리 마음에서 제거하자.
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미움의 잡초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미움은 성도인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움을 가장 무서운 중죄인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와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다. 요일 3:1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움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가장 심각하고 나쁜 마음의 잡초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심각하고 나쁜 잡초인 미움을 우리 마음 밭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있게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미움의 잡초를 우리 마음 밭에서 찾아내어 철저하게 뽑아내야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어떻게 죽였는가? 우발적으로, 과실로 동생을 죽였는가? 아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동생을 미워하는 미움이 그 마음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미움이 가인의 마음속에 있다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움을 그대로 마음속에 놓아두면 자라게 되어 있다. 가만히 두어도 비온 뒤에 죽순이 자라듯이 쑥쑥 잘도 자란다. 미움의 씨가 마음속에 심겨지게 되면 싹이 나고, 잎이 나서 그것이 말로 나타나게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 결국 자라서 죽음의 열매를 맺게 되고 마는 것이다. 로마황제 네로에게 기독교인들에 대한 미움이 결국 로마 시에 불을 질러 놓고 그 방화 범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어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살해 하였다. 독일의 히틀러의 마음속에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이 있을 때, 그 미움이 결국 600만 명의 무고한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가스실에 넣어 죽였다. 미움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그러므로 미움은 살인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미움은 불과 같다. 마음속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작은 것인데도 그 미움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움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면 미워해야하고 내가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하고 그러면 내가 먼저 그 일에 전념하다가 내가 먼저 죽는다. 원수 갚는 것 누가 갚아주신다고 하시는가? 주님이 갚아 주신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은 주님께 맡기고 미움을 떨쳐버리면 되는 것이다. 내가 갚으려고 하면 내가 손해이다. 누군가를 미워해 보라. 마음에 평안, 기쁨, 감사가 있는가? 전혀 없다. 그러면 내가 손해이다.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니까 성령이 떠나고 그 마음에 악신이 역사하여 사울을 번뇌케 하고 괴롭게 하고 불안케 한 것을 볼 수 있다. 악신이 역사하면 사람이 불안, 초조, 염려, 걱정, 근심에 휩싸여 피폐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간에 서로 미워해 보라. 부부가 아니라 원수지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행복해야할 가정이 지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미움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러나 얼마나 우리의 삶에 해악의 요소인지 모른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이웃을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면 절대로 이웃과 화목할 수 없다. 이웃사촌이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 미움으로 이웃과 평생 원수처럼 지내는 것이다. 이런 해악의 요소인 미움의 잡초를 우리 마음에서 제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