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목사(새소망교회 담임)
우리가 예수를 믿는 분명한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구원을 받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귀중한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구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배는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찬송은 구원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것이다. 헌금과 봉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예배 형식보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고, 찬송의 음악성보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며, 헌금과 봉사와 헌신보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중요한 것이다.
첫째, 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다(마9:1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딤전1:15). 예수를 믿어야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
둘째,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엡 2:8에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내주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간단한 것이지만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믿음이 간단하지만 인간 스스로는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믿는다(엡2:9). 예수 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셋째,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구원적 믿음과 생활적 믿음이 있다. 구원적 믿음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믿음이고, 생활적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믿음이다. 구원적 믿음은 강하고 약한 차이도 없고 잘 믿고 못 믿는 차이도 없다. 다만 있든지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즉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건강은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가 있지만,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차이는 없다. 구원받았는가 묻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의 질문이지, 하나님 앞에 잘 사느냐, 못사느냐의 질문이 아니다. 생명이 있으면 구원받았다. 생명이 없으면 구원 못받았다 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다. 구원이 있다. 여러분 속에 영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요일5:12)는 것을 믿으라.
넷째, 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평안과 기쁨이 있다. 요 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간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버리운 자된다. 고후 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라고 하였다.
예수를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라! 예수가 마음에 있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다.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지키라. 그러면 영생의 확신이 생길 것이다.
박재호 목사(새소망교회 담임)
우리가 예수를 믿는 분명한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구원을 받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귀중한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구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배는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찬송은 구원 얻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것이다. 헌금과 봉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예배 형식보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고, 찬송의 음악성보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하며, 헌금과 봉사와 헌신보다 구원의 확신과 기쁨이 중요한 것이다.
첫째, 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다(마9:1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 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딤전1:15). 예수를 믿어야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
둘째,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엡 2:8에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내주셨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간단한 것이지만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믿음이 간단하지만 인간 스스로는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믿는다(엡2:9). 예수 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셋째,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구원적 믿음과 생활적 믿음이 있다. 구원적 믿음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믿음이고, 생활적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믿음이다. 구원적 믿음은 강하고 약한 차이도 없고 잘 믿고 못 믿는 차이도 없다. 다만 있든지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즉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건강은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가 있지만,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차이는 없다. 구원받았는가 묻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의 질문이지, 하나님 앞에 잘 사느냐, 못사느냐의 질문이 아니다. 생명이 있으면 구원받았다. 생명이 없으면 구원 못받았다 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다. 구원이 있다. 여러분 속에 영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요일5:12)는 것을 믿으라.
넷째, 왜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평안과 기쁨이 있다. 요 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간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버리운 자된다. 고후 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라고 하였다.
예수를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라! 예수가 마음에 있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다. 주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지키라. 그러면 영생의 확신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