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에드먼드: 죄에 끌려다니다
하얀 마녀를 찾아가는 길에, 에드먼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녀를 험담하는 이들은 모두 마녀의 적이니까 반은 거짓말일 거야. 아무튼 그 숙녀는 나한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줬잖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친절하게 말이야. 그 숙녀는 진짜 떳떳한 여왕이실 거야. 어쨌든 그 무시무시한 아슬란보다 나을 거야!”
보다시피, 에드먼드의 말은 전부 그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마녀의 적들은 마녀에 대한 말에 거짓을 섞어서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거짓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마녀는 그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아슬란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또한 간단하다. 그녀는 - 적어도 에드먼드가 보기에는 - 사람이고, 아슬란은 사자, 즉 ‘무시무시한’ 야수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아슬란을 버리고 하얀 마녀를 선택한 그의 이러한 행위는 중대한 배반 행위이자 반역이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안다.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바로 그렇게, 자기 안에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을 덮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대범하게’ 아슬란을 배반하는 반역 행위를 저지르는 동기 역시, 이번에도 간단하다. 로쿰, 즉 터키 젤리를 ‘반드시’ 먹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악이 제공하는 자그마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유익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우리가 먼저 살펴본 『반지의 제왕』에서도 볼 수 있다. 악마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에 대한 설명에서, 마법사 간달프는 그 반지를 가지는 사람마다 곧 그것을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그가 그 반지를 먼저 소유한 빌보에게 그것을 프로도에게 두고 떠나라고 하자, 빌보는 그를 검으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빌보는 그 반지를 두고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집에 들어와 절대반지를 집어 손에 든 프로도가 바로 이 물건 때문에 모든 재앙이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라는 간달프의 설명을 듣자 그것을 버려버리자고 한다. 그런 그에게 간달프는 “해보게! 지금 당장 해보게!” 하고 말하고, 빌보와 마찬가지로 프로도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자, 그를 바라보며 “그것 보게” 하고 말하며 웃는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집착은 절대반지나 터키 젤리와 같은 물건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요술이 걸린 물건이지만, 단지 매개체일 뿐 죄 그 자체가 아니다. 죄는 절대반지를 손에 넣거나 터키 젤리를 입에 넣는 사람의 마음의 방향이다. 그 방향이 사우론 또는 하얀 마녀에게 향해 있는 것이다.
에드먼드는 결국 하얀 마녀의 성에 다다랐다. 그녀를 보자, 그는 미친듯이 달려가 자기가 왔다고 외쳤다. 그러나 마녀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감히’ 혼자 왔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의 힐난에, 에드먼드는 자기 행동의 가치를 피력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아주 가까운 곳까지 형제들을 데리고 왔어요. 지금 비버 부부와 함께 강 상류의 댐 꼭대기 작은 집에 있어요.” 그리고 아슬란과 그 군대에 대해서 낱낱이 일러바쳤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악에게 인정받으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내세우는 것은 큰 죄다. 자기를 꾄 악에게 자발적으로 끌려 다니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에드먼드: 죄에 끌려다니다
하얀 마녀를 찾아가는 길에, 에드먼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녀를 험담하는 이들은 모두 마녀의 적이니까 반은 거짓말일 거야. 아무튼 그 숙녀는 나한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줬잖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친절하게 말이야. 그 숙녀는 진짜 떳떳한 여왕이실 거야. 어쨌든 그 무시무시한 아슬란보다 나을 거야!”
보다시피, 에드먼드의 말은 전부 그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마녀의 적들은 마녀에 대한 말에 거짓을 섞어서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거짓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마녀는 그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아슬란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또한 간단하다. 그녀는 - 적어도 에드먼드가 보기에는 - 사람이고, 아슬란은 사자, 즉 ‘무시무시한’ 야수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아슬란을 버리고 하얀 마녀를 선택한 그의 이러한 행위는 중대한 배반 행위이자 반역이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안다.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바로 그렇게, 자기 안에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을 덮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대범하게’ 아슬란을 배반하는 반역 행위를 저지르는 동기 역시, 이번에도 간단하다. 로쿰, 즉 터키 젤리를 ‘반드시’ 먹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악이 제공하는 자그마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유익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우리가 먼저 살펴본 『반지의 제왕』에서도 볼 수 있다. 악마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에 대한 설명에서, 마법사 간달프는 그 반지를 가지는 사람마다 곧 그것을 “미워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그가 그 반지를 먼저 소유한 빌보에게 그것을 프로도에게 두고 떠나라고 하자, 빌보는 그를 검으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빌보는 그 반지를 두고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집에 들어와 절대반지를 집어 손에 든 프로도가 바로 이 물건 때문에 모든 재앙이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라는 간달프의 설명을 듣자 그것을 버려버리자고 한다. 그런 그에게 간달프는 “해보게! 지금 당장 해보게!” 하고 말하고, 빌보와 마찬가지로 프로도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자, 그를 바라보며 “그것 보게” 하고 말하며 웃는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집착은 절대반지나 터키 젤리와 같은 물건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요술이 걸린 물건이지만, 단지 매개체일 뿐 죄 그 자체가 아니다. 죄는 절대반지를 손에 넣거나 터키 젤리를 입에 넣는 사람의 마음의 방향이다. 그 방향이 사우론 또는 하얀 마녀에게 향해 있는 것이다.
에드먼드는 결국 하얀 마녀의 성에 다다랐다. 그녀를 보자, 그는 미친듯이 달려가 자기가 왔다고 외쳤다. 그러나 마녀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감히’ 혼자 왔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의 힐난에, 에드먼드는 자기 행동의 가치를 피력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아주 가까운 곳까지 형제들을 데리고 왔어요. 지금 비버 부부와 함께 강 상류의 댐 꼭대기 작은 집에 있어요.” 그리고 아슬란과 그 군대에 대해서 낱낱이 일러바쳤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악에게 인정받으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내세우는 것은 큰 죄다. 자기를 꾄 악에게 자발적으로 끌려 다니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