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소설 『반지의 제왕』
J. R. R. 톨킨은 자신이 창조한 ‘중간계(Middle-Earth)’를 배경으로 하는 실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지금까지 책으로 출판된 작품만 하더라도, 우선 ‘중간계’ 이야기의 본편이라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 그리고 『실마릴리온』이 있고, 외전으로 이른바 ‘아타나타리온 삼부작’인 『후린의 아이들』과 『베렌과 루시엔』, 그리고 『곤돌린의 몰락』이 있으며, 그 외에 여러 단편들을 모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누메노르의 몰락』, 그리고 『중간계의 자연』이 있고, 총 12권으로 정리된 『중간계의 역사』 등이 있다. 이 모든 작품이 톨킨의 방대한 판타지 세계를 이루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톨킨의 ‘레젠다리움(legendarium)’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을 이해하려면 그 무대가 되는 톨킨의 ‘레젠다리움’, 즉 ‘중간계’의 세계관을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2. ‘중간계’ 약사 1: 아이눌린달레와 발라퀜타
“아르다(Arda)에서 일루바타르(Ilúvatar)라 불리는 유일자 에루(Eru)가 있었다. 그는 먼저 그의 생각으로 ‘거룩한 자들’이라 불리는 아이누르(Ainur)를 낳았는데, 그들은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 그와 함께 있었다.” ‘중간계’ 역사의 창세기에 해당하는 『실마릴리온』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부터 톨킨은 유일신론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유일신은 창조주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톨킨은 이 유일신이 음악으로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일루바타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음악을 보아라!’ 그가 그들에게 소리만 존재하던 곳에 형상을 부여하자, 그들의 눈에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여기서 아이누르는 ‘천사들’에 해당하는 하늘의 영적 존재들이다.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자는 멜코르(Melkor)였다. 그런데 그는 유일신 일루바타르의 ‘창조의 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주하기를 원했다. 일루바타르의 음악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유일신은 그를 천상계에서 내쫓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너, 멜코르는 나에게 그 근원을 두지 않은 음악은 연주할 수 없으며, 나의 뜻에 반하여 나의 음악을 바꿀 수 있는 자는 없다는 것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그렇게 바꾸고자 하는 자는 더욱 훌륭한 것을 창조하는 나의 도구임을 증명하게 되리라.” 그후 멜코르는 유일신의 창조를 방해하고 무너뜨리며 다녔으나, “창조는 헛되지 않았다… 처음 의도와는 다른 형상을 가지게 되었을지라도, 땅은 서서히 그 형체를 갖추게 되었고 또 굳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중간계’의 창조 이야기에는 톨킨의 기독교 세계관이 짙게 배어 있다. 우선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가 유일신의 피조물이며, 그 신의 이름이 성경의 유일신인 ‘엘(El)’과 유사한 ‘에루(Eru)’이며, 그 세계에서도 타락한 천사에 의한 최초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서사 구조는 성경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구조적 모방이 아니다. 그는 이 창조 이야기에 섭리의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아무리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파괴하려 든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는 것이다(롬 8:28 참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은 더이상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톨킨은 그의 글을 통하여 그들과 정반대되는 것, 즉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