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명 목사(나누리선교회장)
부활절이 되면 세 나무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이스라엘 산에 올리브 나무, 떡갈나무, 산딸나무가 살았다. 올리브 나무는 화려한 보석을 담는 상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어떤 목수가 올리브 나무로 짐승이 먹는 먹이통을 만들어 꿈이 다 깨져버렸다. 떡갈나무는 자기를 큰 배로 만들어 세계를 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배 만드는 사람이 자기를 베어 조그만 낚시 배로 만들어 그 꿈이 다 깨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산딸나무는 좋은 집의 재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는데 어느 날 벼락이 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짐승의 먹이통에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여 모든 왕들이 절을 하였다. 떡갈나무로 만든 낚시 배는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타시고 갈릴리 호수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발이 되었다. 그리고 번개를 맞아 죽은 산딸나무는 부활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무가 되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두 뿌리는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성탄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약시대 양이나 소 같은 제물처럼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히9:12) 부활절은 이 예수님이라는 제물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서 우리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하나님이 이 제물을 받으셨고, 우리의 죄가 다 용서되었고, 또 앞으로 짓는 죄도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을 예수님의 부활로 증명해주신 날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9~20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뿐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절제하며 사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음과 우리도 죽은 후 부활하여 천국에서 상급 받을 것을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을 믿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더 불쌍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뜻이다.
누가 “사랑은 크리스마스에 내렸네. 오! 아름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시를 썼는데, 우리는 “사랑은 부활절에 내렸네. 오! 아름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라고”라고 외쳐야 한다(롬5:8). 미국 보스톤에 고든 콘웰신학교가 있다. 이 신학교는 1884년 러셀 콘웰장군이 세운 학교다. 콘웰장군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남북전쟁 때 북군 지휘관으로 남군과 싸우다 패해서 후퇴하다가 자기 방에 지휘봉을 두고 온 것이 기억이 나 심부름하는 병사에게 지휘봉을 갖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병사가 지휘봉을 갖고 오다 총탄에 맞았는데도 장군 앞에까지 와서 지휘봉을 건네주고 죽어가는 것을 본 장군은 너무 후회가 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그 병사가 “장군님 아무 걱정마세요.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어도 괞찬아요. 다시 부활하니까요” 하며 죽었다. 코넬 장군은 하나님께 “이 병사가 죽으면서 남긴 말이 무엇입니까? 저 병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엇으로 대접해야 합니까?” 하며 외칠 때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믿어라, 믿음을 가져라, 복음을 전하라 그것이 병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라는 음성이 들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고든 목사님과 함께 신학교를 세워 사람들에게 구원과 부활의 복음 대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과 부활을 쌓아놓은 창고이다. 우리는 이 창고에서 날마다 구원과 부활의 선물을 꺼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성탄의 다리를 건너 부활의 집(본향)으로 가는 순례자들이다. 사형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 대통령의 사면령 아닌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부활하여 천국 가는 것 아닌가? 바로 이 <부활>이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에 갇혀 있는 자녀들과 우주 만물에게 주신”대 사면령” 이시다 할렐루야! 아멘.

이수명 목사(나누리선교회장)
부활절이 되면 세 나무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이스라엘 산에 올리브 나무, 떡갈나무, 산딸나무가 살았다. 올리브 나무는 화려한 보석을 담는 상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어떤 목수가 올리브 나무로 짐승이 먹는 먹이통을 만들어 꿈이 다 깨져버렸다. 떡갈나무는 자기를 큰 배로 만들어 세계를 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배 만드는 사람이 자기를 베어 조그만 낚시 배로 만들어 그 꿈이 다 깨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산딸나무는 좋은 집의 재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는데 어느 날 벼락이 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짐승의 먹이통에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여 모든 왕들이 절을 하였다. 떡갈나무로 만든 낚시 배는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타시고 갈릴리 호수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발이 되었다. 그리고 번개를 맞아 죽은 산딸나무는 부활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무가 되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두 뿌리는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성탄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약시대 양이나 소 같은 제물처럼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히9:12) 부활절은 이 예수님이라는 제물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바쳐져서 우리의 죄가 다 용서함을 받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하나님이 이 제물을 받으셨고, 우리의 죄가 다 용서되었고, 또 앞으로 짓는 죄도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을 예수님의 부활로 증명해주신 날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9~20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뿐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절제하며 사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음과 우리도 죽은 후 부활하여 천국에서 상급 받을 것을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을 믿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더 불쌍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뜻이다.
누가 “사랑은 크리스마스에 내렸네. 오! 아름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시를 썼는데, 우리는 “사랑은 부활절에 내렸네. 오! 아름다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라고”라고 외쳐야 한다(롬5:8). 미국 보스톤에 고든 콘웰신학교가 있다. 이 신학교는 1884년 러셀 콘웰장군이 세운 학교다. 콘웰장군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남북전쟁 때 북군 지휘관으로 남군과 싸우다 패해서 후퇴하다가 자기 방에 지휘봉을 두고 온 것이 기억이 나 심부름하는 병사에게 지휘봉을 갖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병사가 지휘봉을 갖고 오다 총탄에 맞았는데도 장군 앞에까지 와서 지휘봉을 건네주고 죽어가는 것을 본 장군은 너무 후회가 되어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그 병사가 “장군님 아무 걱정마세요.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어도 괞찬아요. 다시 부활하니까요” 하며 죽었다. 코넬 장군은 하나님께 “이 병사가 죽으면서 남긴 말이 무엇입니까? 저 병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엇으로 대접해야 합니까?” 하며 외칠 때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믿어라, 믿음을 가져라, 복음을 전하라 그것이 병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라는 음성이 들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고든 목사님과 함께 신학교를 세워 사람들에게 구원과 부활의 복음 대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과 부활을 쌓아놓은 창고이다. 우리는 이 창고에서 날마다 구원과 부활의 선물을 꺼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성탄의 다리를 건너 부활의 집(본향)으로 가는 순례자들이다. 사형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 대통령의 사면령 아닌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은 부활하여 천국 가는 것 아닌가? 바로 이 <부활>이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에 갇혀 있는 자녀들과 우주 만물에게 주신”대 사면령” 이시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