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명 목사(나누리나누리선교회장)
두 주전에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푸른 하늘을 보니 가을이 벌써 다가온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길동 꽃시장에 가 국화꽃 화분을 사갖고 와 아파트 거실 정원에 놓아보니 은은히 풍기는 국화꽃 향기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때 꽃가게에 크리스마스 꽃인 빨간 포인세티아가 있어 하나 사가자기고 집 현관 문 앞에 놓으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진다.
나는 포인세티아 꽃을 보면서 얼마 전에 미국에 사는 사촌 누님이 보내준 에셀나무 동영상 글이 생각이 나 여기 소개해 본다.
에셀나무는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도시 브엘세바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로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 때에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 날을 지냈던 곳이다(창21:33-34). 그런데 광야에는 로뎀 나무도 있고 싯딤 나무도 있는데 왜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을까? 브엘세바는 한 여름에는 영상 42도까지 올라가는 살인적인 더위가 있는 곳으로 다른 나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곳이라 에셀나무를 심어 쉼터와 그늘을 만들었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 에셀나무는 어떻게 이런 지역에서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이 나무는 뿌리가 30m까지 뻗어내려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먹는다. 나무 높이는 최대 15m까지 자라는 강인한 생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지들과 잎은 큰 그늘을 만들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무 이파리는 소나무 잎 같이 생겨 밤에 내리는 이슬과 염분을 먹은 후 아침 해가 뜨면 서서히 이슬이 증발하면서 사막의 열기를 10도 이상 낮추어 주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해주는 기쁨의 나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고 나서 언제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너는 복의 근원이다”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이웃에게 복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래서 조카 롯과 헤어질 때도 먼저 “네가 좋은 땅을 선택하라” 하였다. 그때 조카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고 떠났다(창12:9-10).
이 세상에는 “그만사”의 사람이 있고 “그찾사”의 사람이 있다. 그만사의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그늘을 만들어”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고 그찾사는 “그늘을 찾아” 자기나 쉬는 롯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당연히 그만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찾사의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시원한 그늘에서 풍요롭게 쉬고 사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예배의 그늘, 기도의 그늘, 물질의 그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아브라함이 만들어준 그늘을 버리고 세상 그늘로 자꾸 가 버리니 하나님의 복을 떠나는 것이다. 하루를 살면서 항상 생각할 것은 “나는 좋은 말과 미소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야 된다. 왜냐하면 말과 미소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특별히 나를 희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효과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왕인 존워너 메이커는 미국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친절한 말과 미소는 돈이 안 들어가지만 돈을 많이 벌어준다”라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양옆 벽면 거울 밑에 혜림교회, 성안교회 광고가 있고 앞면에는 대광교회 광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은 복 받았군”하며 “하나님 아버지가 구원시킬 사람을 구원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누가 복음의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두 주전에 엘리베이터 옆 코너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조그만 화분대에 포인세티아 꽃과 국화와 넝쿨나무를 놓아 아주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마다 기분이 좋고 감사의 마음이 든다. 누가 그만사의 마음으로 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모든 나라에서 원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때에 이렇게 원망보다 위로와 기쁨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만사의 크리스챤”이 되어보자. 아브라함처럼 그만사를 택할 것인가 롯처럼 그찾사를 택할 것인가는 자기의 선택이다. 아멘.

이수명 목사(나누리나누리선교회장)
두 주전에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푸른 하늘을 보니 가을이 벌써 다가온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길동 꽃시장에 가 국화꽃 화분을 사갖고 와 아파트 거실 정원에 놓아보니 은은히 풍기는 국화꽃 향기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때 꽃가게에 크리스마스 꽃인 빨간 포인세티아가 있어 하나 사가자기고 집 현관 문 앞에 놓으니 벌써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진다.
나는 포인세티아 꽃을 보면서 얼마 전에 미국에 사는 사촌 누님이 보내준 에셀나무 동영상 글이 생각이 나 여기 소개해 본다.
에셀나무는 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도시 브엘세바에서 많이 자라는 나무로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 때에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 날을 지냈던 곳이다(창21:33-34). 그런데 광야에는 로뎀 나무도 있고 싯딤 나무도 있는데 왜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었을까? 브엘세바는 한 여름에는 영상 42도까지 올라가는 살인적인 더위가 있는 곳으로 다른 나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곳이라 에셀나무를 심어 쉼터와 그늘을 만들었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 에셀나무는 어떻게 이런 지역에서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이 나무는 뿌리가 30m까지 뻗어내려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먹는다. 나무 높이는 최대 15m까지 자라는 강인한 생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지들과 잎은 큰 그늘을 만들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나무 이파리는 소나무 잎 같이 생겨 밤에 내리는 이슬과 염분을 먹은 후 아침 해가 뜨면 서서히 이슬이 증발하면서 사막의 열기를 10도 이상 낮추어 주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해주는 기쁨의 나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고 나서 언제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너는 복의 근원이다”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이웃에게 복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래서 조카 롯과 헤어질 때도 먼저 “네가 좋은 땅을 선택하라” 하였다. 그때 조카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고 떠났다(창12:9-10).
이 세상에는 “그만사”의 사람이 있고 “그찾사”의 사람이 있다. 그만사의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그늘을 만들어”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고 그찾사는 “그늘을 찾아” 자기나 쉬는 롯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당연히 그만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찾사의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시원한 그늘에서 풍요롭게 쉬고 사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예배의 그늘, 기도의 그늘, 물질의 그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아브라함이 만들어준 그늘을 버리고 세상 그늘로 자꾸 가 버리니 하나님의 복을 떠나는 것이다. 하루를 살면서 항상 생각할 것은 “나는 좋은 말과 미소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야 된다. 왜냐하면 말과 미소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특별히 나를 희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효과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왕인 존워너 메이커는 미국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친절한 말과 미소는 돈이 안 들어가지만 돈을 많이 벌어준다”라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양옆 벽면 거울 밑에 혜림교회, 성안교회 광고가 있고 앞면에는 대광교회 광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은 복 받았군”하며 “하나님 아버지가 구원시킬 사람을 구원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누가 복음의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두 주전에 엘리베이터 옆 코너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조그만 화분대에 포인세티아 꽃과 국화와 넝쿨나무를 놓아 아주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마다 기분이 좋고 감사의 마음이 든다. 누가 그만사의 마음으로 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모든 나라에서 원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때에 이렇게 원망보다 위로와 기쁨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만사의 크리스챤”이 되어보자. 아브라함처럼 그만사를 택할 것인가 롯처럼 그찾사를 택할 것인가는 자기의 선택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