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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길에서 )이슬받이

2021.02.11 21:37 입력 | 조회수 :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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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말도 예쁘고 뜻도 아름다운 ‘이슬받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
 [그 날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왜 안 가냐고 어머니가 물어, 공부도 재미가 없고, 학교 가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얼른 교복을 갈아 입어라.” “학교 안 간다니까” 그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만만히 보아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 그랬다. 다들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썼다/ ‘얼른 가자’ 어머니가 재촉했다. 어머니의 손에는 지겟작대기가 들려 있었다. “지겟 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에미가 이걸로 널 때리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냐? 너 데려다 주는 데 필요해서 그러니 걱정말고……/ 신작로로 가는 산길에 이르자 거기에서부터는 이슬받이였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좁은 산길 양옆으로 풀잎이 우거져 길 한 가운데로 늘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풀잎마다 이슬방울이 조록조록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지겟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떨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발로 이슬을 떨고 , 지겟작대기로 이슬을 떨었다.]
 이 글은 이순원 작가의 수필 [어머니는 왜 숲 속의 이슬을 떨었을까]의 일부분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학교를 가기 싫어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이 진솔하게 드러난 자신의 경험을 쓴 글이다. 요즘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없이 그저 해대는 투정과는 다르다. 몇 십리를 걸어가야 학교가 있고 이렇다 할 길도 없어 아침 이슬에 젖은 풀밭을 헤치고 가야하는  등굣길을 마냥 좋게만 여길 수 없는 시골 학도들의 한 시절의 회고담이다.
 수업 시간에 하품을 유난히 자주하는 아이에게 무엇이 그리 몸을 피곤하게 하는지, 원인을 알고 싶어 물었더니 비대면 수업으로 지친 학교 수업과 과다한 숙제 때문에 밤 늦도록 공부를 해야해서 늘 몸이 피곤하다고 한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이슬을 떨어주는 작가의 어머니나 오늘 날 어머니들의 학업에 대한 열의는 결과로 보아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이유없이 화가 치민다.
 나의 학창 시절은 늘 숨이찼다. 고등학교만 나오면 됐지 여자가 대학은 무슨......하면서 온 식구가 뜯어 말렸지만 고집 불통, 내가 벌어서 학교를 마치겠노라, 과외와 장학금으로 호언장담한 그 다짐을 지키느라 대학가의 즐비한 커피숍의 간판을 그저 쳐다보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이슬받이’는 양쪽에 이슬 맺힌 풀이 우거진 좁은 길을 의미한다. 우리 인생길에 이슬받이는 어데 있을까? 있다면 그 곳을 지나야 할텐데 이미 지난 것일까? 아님, 곧 당도할 이슬받이를 향해 줄기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 허기사 지겟작대기로 이슬떨이를 해 줄  그 분이 먼저 내 앞을 재촉하는데 무슨 걱정을 하랴 !  
 이 글은 가르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나의 잠언과 같은 얘기다. 학교를 개강하게 되어 이글을 올린다. 이슬떨이를 열심히 해주려고 선생들은 이 시간도 바쁜 시간을 쪼개는데 우리 애들은 투덜대지 않고 젖은 이슬의 풀밭을 헤치며 따라오고 있는지...... 지친 마음에 주저 앉아 버리는 건 아닌지...... 지겟작대기의 의미를, 이슬받이의 어머니의 사랑을 안다면, 힘내어 따라와 주지 않을까! 애원하듯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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