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나누리나누리선교회장)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벤쿠버 밀플렌이라는 도시에 있는 미국 감리교회를 빌려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시작된 후 얼마 있다가 여자 한분이 교회에 와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이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 후 몇 주 예배를 드리다가 등록을 하였다. 교회를 개척한 후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를 찾아와 새 가족이 되니 우리 부부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아마 이런 기쁨은 개척교회를 해본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기쁨일 것이다. 이 여자 분이 등록을 할 때 자기 신분을 밝혔다. “목사님 저는 침례교회 목사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혼을 한 후 남편은 목회를 그만 두었고 저는 아들, 딸과 함께 이 부근으로 이사와 교회를 찾던 중 이 교회에 와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 그런 일이 있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구나’ 생각되었다. 그 후 예배를 잘 드리며 마음에 평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목회에 큰 기쁨을 가졌다.
얼마 후에 교회를 구입해 이사한 후 LA에서 아들 친구 아버지인 정 권사님이 이혼한 후 두 아들 있는 곳으로 와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때 교회에서는 매주 토요일 노방전도를 나갔다. 이 두 분들도 꼭 참여 하여 전도하다가 1년 정도 되었을 때 서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두 사람의 장성한 자녀들이 축복하는 가운데 결혼한 후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두 분들은 믿음이 깊었고 기도의 대장들이었다. 새벽기도 후에는 지하에 있는 주일학교 방에 각각 들어가 늘 기도하였다. 부인되는 박권사님은 눈물의 기도를 많이 드렸고 남편되는 정권사님은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분이 주여! 주여! 주여! 하며 외칠 때는 그 소리가 1층까지 들려왔다. 그런데 이분이 나를 위해 대표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목사님을 생각하시사 쓰시다가 버리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기도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니 무슨 기도를 저렇게 하나 좋은 말이 많이 있는데 왜 쓰다가 버리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도 성도들이 다 듣는 가운데서’하며 기분이 상했다. 그렇다고 “왜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할 수도 없었다. 한번은 그가 동네에서 운영하는 그로서리 마켓을 심방하여 예배드린 후 나는 “권사님,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요” 했더니 그가 “예, 목사님! 이 그로서리를 팔게 해주시던지 아니면 망하게 해서 문을 닫게 해 주시던지 기도 부탁드립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아니, 권사님 왜 그런 기도를 부탁합니까”물었더니 그는 “목사님 그로서리는 주일에 문을 못닫아 예배를 드릴수가 없지 않아요”하는 소리에 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그가 원하는 대로 기도하였다. 예배 후 같이 식사를 나눌 때 정권사님이 “목사님, 목사님을 하나님이 쓰시다가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할 때 마음이 상하시지요. 그러나 제가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제가 새벽기도 때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할 때 늘 저의 마음에 이 말씀을 주시니 저도 힘들지만 하나님이 목사님을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느껴 기도합니다. 용서해주세요”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서운함이 눈 녹듯이 녹아버렸고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정권사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가 권사님에게 섭한 마음을 가졌는데 제가 마음이 너무 좁았군요. 그동안 아버지가 저를 쓰시는 것이 권사님 중보 기도하는 그 소리를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주신 것이군요. 제가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하였다. 그 후 정권사님이 운영하던 그로서리는 팔렸고 권사님은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큰 마켓에 매주 토요일에 일하고 주일에 쉬는 조건으로 취직이 되어 그의 기도인 주일에 온전히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내가 교회를 사임하고 브라질로 온 후 한동안 매년 1월 1일이 되면 미국에서 전화로 새해 첫인사를 드리며 미국에 갈 때면 두 분이 식사를 대접하며 아름답게 노후를 지내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요새 새벽기도 때 십자가 밑에서 시편 71편 18절 말씀 “하나님 아버지!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지리 마소서”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도한 대로 해주심을 믿는다. 한없이 부족하고 흠이 많은 나같은 죄인이 미국과 브라질에서 목회를 잘 마치게 된 것은 바로 진실한 성도들이 나를 위해 중보 기도한 덕으로 하나님이 긍휼을 입혀 주신 것이다.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의 기도이다.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할 때 너무 거창하거나 미사어구보다 진실한 기도로 담임목사님과 돕는 주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 응답하실 것이다. 아멘.
이수명 목사(나누리나누리선교회장)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벤쿠버 밀플렌이라는 도시에 있는 미국 감리교회를 빌려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시작된 후 얼마 있다가 여자 한분이 교회에 와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이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 후 몇 주 예배를 드리다가 등록을 하였다. 교회를 개척한 후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를 찾아와 새 가족이 되니 우리 부부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아마 이런 기쁨은 개척교회를 해본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기쁨일 것이다. 이 여자 분이 등록을 할 때 자기 신분을 밝혔다. “목사님 저는 침례교회 목사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혼을 한 후 남편은 목회를 그만 두었고 저는 아들, 딸과 함께 이 부근으로 이사와 교회를 찾던 중 이 교회에 와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아 그런 일이 있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구나’ 생각되었다. 그 후 예배를 잘 드리며 마음에 평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목회에 큰 기쁨을 가졌다.
얼마 후에 교회를 구입해 이사한 후 LA에서 아들 친구 아버지인 정 권사님이 이혼한 후 두 아들 있는 곳으로 와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때 교회에서는 매주 토요일 노방전도를 나갔다. 이 두 분들도 꼭 참여 하여 전도하다가 1년 정도 되었을 때 서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두 사람의 장성한 자녀들이 축복하는 가운데 결혼한 후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두 분들은 믿음이 깊었고 기도의 대장들이었다. 새벽기도 후에는 지하에 있는 주일학교 방에 각각 들어가 늘 기도하였다. 부인되는 박권사님은 눈물의 기도를 많이 드렸고 남편되는 정권사님은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분이 주여! 주여! 주여! 하며 외칠 때는 그 소리가 1층까지 들려왔다. 그런데 이분이 나를 위해 대표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목사님을 생각하시사 쓰시다가 버리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기도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니 무슨 기도를 저렇게 하나 좋은 말이 많이 있는데 왜 쓰다가 버리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도 성도들이 다 듣는 가운데서’하며 기분이 상했다. 그렇다고 “왜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할 수도 없었다. 한번은 그가 동네에서 운영하는 그로서리 마켓을 심방하여 예배드린 후 나는 “권사님, 기도 제목이 있으신가요” 했더니 그가 “예, 목사님! 이 그로서리를 팔게 해주시던지 아니면 망하게 해서 문을 닫게 해 주시던지 기도 부탁드립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아니, 권사님 왜 그런 기도를 부탁합니까”물었더니 그는 “목사님 그로서리는 주일에 문을 못닫아 예배를 드릴수가 없지 않아요”하는 소리에 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그가 원하는 대로 기도하였다. 예배 후 같이 식사를 나눌 때 정권사님이 “목사님, 목사님을 하나님이 쓰시다가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할 때 마음이 상하시지요. 그러나 제가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제가 새벽기도 때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할 때 늘 저의 마음에 이 말씀을 주시니 저도 힘들지만 하나님이 목사님을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느껴 기도합니다. 용서해주세요”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서운함이 눈 녹듯이 녹아버렸고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정권사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가 권사님에게 섭한 마음을 가졌는데 제가 마음이 너무 좁았군요. 그동안 아버지가 저를 쓰시는 것이 권사님 중보 기도하는 그 소리를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주신 것이군요. 제가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하였다. 그 후 정권사님이 운영하던 그로서리는 팔렸고 권사님은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큰 마켓에 매주 토요일에 일하고 주일에 쉬는 조건으로 취직이 되어 그의 기도인 주일에 온전히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내가 교회를 사임하고 브라질로 온 후 한동안 매년 1월 1일이 되면 미국에서 전화로 새해 첫인사를 드리며 미국에 갈 때면 두 분이 식사를 대접하며 아름답게 노후를 지내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요새 새벽기도 때 십자가 밑에서 시편 71편 18절 말씀 “하나님 아버지!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지리 마소서”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도한 대로 해주심을 믿는다. 한없이 부족하고 흠이 많은 나같은 죄인이 미국과 브라질에서 목회를 잘 마치게 된 것은 바로 진실한 성도들이 나를 위해 중보 기도한 덕으로 하나님이 긍휼을 입혀 주신 것이다.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의 기도이다.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할 때 너무 거창하거나 미사어구보다 진실한 기도로 담임목사님과 돕는 주님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 응답하실 것이다. 아멘.